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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영 대구보건대 교수 |
지난 2일 방송된 ‘이산’ 에서는 정조임금이 안경 낀 모습으로 등장해 화제가 됐다.
실제 정조는 우리나라 최초로 안경을 사용한 임금으로도 유명하다.
정조실록에 따르면 정조는 즉위 23년 1799년부터 안경을 쓴 것으로 기록돼있다.
정조실록 권52에는 정조가 ‘안경을 끼고 조회를 보면 놀랍도록 잘 보이지만 안경이 없으면 책이나 서류를 보기 어렵다’ 고 밝힌 내용이 나온다.
몇 년 전 개봉된 영화 ‘영원한 제국’ 에서 처음 정조가 안경을 쓴 모습이 나타났으나 그때의 안경은 정확한 고증을 거치지 않은 모양이어서 실망감을 안겨줬다.
당시 영화에서 나온 정조임금의 안경은 문양이 동양적인 모양이 아니었고 다리 또한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어 실제 정조가 사용한 안경과는 차이가 많은 것이었다.
최근 실제 정조임금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옥안경과 정조의 친필이 함께 발견됐다.
이 안경은 다리는 실, 테는 옥으로 만들어져 매우 동양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드라마 ‘이산’ 에서 사용된 안경은 실제 정조가 사용했던 안경과 매우 비슷한 모양의 안경으로 평가할 수 있다.
안경이 최초로 만들어진 것은 13세기말 이탈리아였고 우리나라에는 1580년경 중국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안경은 조선조 후기에 이르기까지 극히 소량으로 생산되어 제한된 일부 계층에게만 보급 됐다.
이로 인해 안경은 신분이 높은 사람이나 나이가 많이 든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됐고 이러한 인식이 안경의 생산과 보급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안경이 나름대로의 위치를 찾고 발전을 이룩한 시기는 영조 때부터였다고 할 수 있으며 다음 임금인 정조 때부터 민간에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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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
조선조 말기인 고종 때까지도 안경에 대한 예법은 매우 까다로워서 어른 앞에서 안경을 착용하는 것은 결례로 인식됐다.
1891년 일본 사신으로 온 오이시는 고종을 알현하면서 안경을 벗지 않아 큰 말썽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웃어른에게 인사를 할 때 안경을 벗는 것이 예의인데 하물며 임금 앞에서 안경을 쓰고 있었으니 당시로서는 큰 결례였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오이시는 끝까지 안경을 벗지 않아 조정에서 일본정부에 항의 문서를 보내기도 했다.
이에 비해 1882년 우리나라에 온 독일의 뮐렌도르프는 고종을 알현하면서 안경을 벗고 큰절을 세 번해 고종의 총애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일본의 수신사로 떠나게 된 김기수는 수신사 일행에게 안경을 쓰도록 해 우리나라의 우월함을 일본인들에게 과시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체 높은 사람들만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안경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신사 일행은 안경 쓴 모습으로 일본인 들을 내려다보면서 동경시내를 활보 했다고 전해진다.
드라마에서 정조임금의 안경 쓴 모습이 비춰지는 것은 단순히 정조임금이 안경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리려는 목적만은 아닐 것이다.
조선의 개혁을 이끌고 가장 열린 생각을 가진 군주로 평가받는 정조 이산의 안경 쓴 모습을 통해 굳게 닫혀있던 조선의 문이 활짝 열려가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제작진의 숨은 의도가 담긴 상징적인 모습이리라 생각해 본다.
도움말: 이정영 대구보건대학 교수, 시선안경

















